28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님의 신작소설 <28>을 읽었습니다.
7년의 밤을 읽을때도 책에 푹~빠져서는 정신없이 읽었었는데,
이번 소설 <28>역시 마찬가지로 단 하루만에 읽었습니다..
긴박한 이야기와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으로
소설에 집중할 수 밖에 없더라구요..-.-;;
참으로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남자,여자를 굳이 나눠서가 아니라
작가들도 남자, 여자의 특유의 문체라든가 하는 특징이 있기 마련인데,
정유정님의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여자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소설의 소재라든가, 문체라든가, 이야기 구조라든가..
여성답지 않은 힘이 느껴지는듯 합니다..
소설<28>은 가상의 도시 "화양"에서 원인불명의 전염병이 돌면서
그 도시 안에서 28일동안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입니다.
드림랜드를 운영하며 유기견을 보살피는 수의사 서재형은
개썰매 경주에 참가했던 한국인 최조의 머셔였지만,
알래스카에서 자신의 분신처럼 사랑했던 개 썰매팀 쉬차의 몰살이후
한국에서 속죄하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수의사 재형을 단 한줄의 기사로 나락으로 떨어뜨린 김윤주는
재형과 그가 구조한 개 '쿠키'의 사연을 알지 못한채,
단지 제보에만 의지해 이분법적 논리로 수의사 재형을 곤란에 빠뜨린 인물입니다.
119구조대원 한기준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 애쓰면서도
그의 임무를 게을리하지 못하는 특수부대출신의 우직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소설속에서 가장 악인으로 나오는 박동해는
어린시절 자신이 갈구했던 애정을 부모로부터 받지 못하자
그에 대한 반감으로 아버지의 개들을 죽이기 시작하면서
악동에서 서서히 괴물이 되어갑니다.
사실, 전염병의 창궐이라던가 그로인한 사람들의 격리, 폐쇄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보아왔던 소재들인데요,
의문의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던 '더 바이러스'나 '연가시'가 떠오르기도 하고,
좀비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도시를 폐쇄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던
다수의 좀비영화들이 오버랩되기도 하고,
정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 정부로부터 버림받는 모습은
1980년의 광주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설 <28>의 다른 점은 고립되어진 도시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떤 희망이나 영웅의 이야기 없이 비참한 모습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치료약을 개발했다거나,
소설의 주인공들이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난다거나 하는
희망이나 해피엔딩 따위는 이 소설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아비규환속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악한 본성-살인, 폭력, 강탈, 강간등-
그리고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의 이야기만이 죽음의 도시 "화양"을 채워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선 사람 못지 않은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개"입니다.
서재형이 사랑하는 개, 쿠키와 스타
그리고 스타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는 개, 링고
사람들이야기 못지 않게 개들의 이야기, 특히 링고의 심리표현이 탁월합니다.
스타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버리는 링고의 이야기도 가슴 찡합니다.
<28>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는데요,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죽음도 슬펐지만,
인간에게 버림받고 이유도 모른채 생매장당한 개들의 이야기도
너무 가슴아팠습니다..
구제역파동으로 산채로 구덩이에 파묻혔던 돼지와 소,
원인이 확실하지도 않지만 개로부터 전염병이 확산됐을거라는 추측때문에 산채로 파묻히는 개..
인간은 인간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서슴치않는 존재일까요?
사실, 소설에선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화양"속의 시민들을 포기합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 질수 있을까요?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계속 "살려주세요"라는 외침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